신중하고 정교히 건축된 말과 침묵의 조율사로서, 한트케의 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이 소설에서는 (초기의 언어실험들과는 달리) 환상적이고 내면성찰적인 새로운 서사의 풍경이 로드무비처럼 펼쳐진다. 이 시적인 제목 안에 그의 문학이 가닿으려 한 궁극의 시공간이 압축적으로 다 담겨 있다. 예기치 않은 폭력을 겪은 뒤 실어상태에 떠돌던 화자가 다시 말을 찾기까지의 여정을 그린 이 소설은 한트케가 자신을 판돈으로 내걸고 선보인 문학적 정치적 우화 같기도 하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작가보다 작품을 더 옹호하게 해줄 단서와도 같은 작품.
전업 작가가 되기 전 육아와 일, 글쓰기를 병행해야 했던 모리슨은 아직 어둑할 때 일어나 동이 틀 때까지 글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작품을 읽으면 마치 동이 터오는 순간을 바라보는 느낌이다. 아무리 어둡고 슬픈 과거에 잠겨 있어도 우리 곁에는 어느새 새로운 하루가 다가와 있다.
솔 벨로는 이 소설을 발표한 이듬해 1976년 퓰리처상과 노벨상을 둘 다 거머쥐었다! "험볼트는 불타오르는 실패였고, 나는 새로 태어난 성공이었다." 과연 솔 벨로다운 생생하고 역동적인 두 인물의 폭풍우 같은 격돌을 예감케 하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세기의 두 작가 중 먼저 죽은 험볼트가 무덤에서 보내온 선물은 무엇일까? 마지막 책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소위 예술가들 사이의 수수께끼 같은 길항과 시대 변화에 따른 씁쓸한 갈등을 무던히 되뇌며 여러 질문을 회오리치게 하는, 그야말로 내면에 진땀을 나게 하는 소설.
2차대전 후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소년의 이야기. 역사적 상흔을 덧입히기 위해 뮐러는 시적 조어를 빚어낸다. 배고픈 천사, 심장삽, 양철키스… 참혹한 기억이 베틀에 걸린 실처럼 빈틈없이 놓인다. 흉터로 가득한 세상에 문학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그에 대한 답이다.
아니 에르노의 『단순한 열정』은 사랑에 빠진 한 여자의 기다림과 고통에 관한 이야기다. 외국인 유부남을 사랑했던 작가 자신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에서 사랑은 도덕적 판단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사랑하는 동안의 기다림은 이별 이후에도 끝나지 않고, 기억과 욕망의 형태로 현재를 붙잡는다. 영화 《두번째 사랑》의 주인공 소피와 지하 처럼 현실의 경계를 넘어선 사랑은 때로 삶의 질서를 무너뜨리면서까지 한 사람을 기다리게 한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결국 글쓰기가 된다.
2001년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의 원작인 이 책은 '모녀 서사'의 독특한 한 장을 써낸, 강렬하고도 지독한 소설이다. 1983년 발표 당시 가히 충격적일 정도의 폭력의 연쇄와 성적 묘사로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것이, 2004년 노벨문학상 수상과 더불어 세계는 또다시 새롭게 이 소설에 매혹당했다. 우선 읽고 나면 뇌리에서 절대 빠져나가지 않을 작품이다. 영화와 소설을 꼭 비교해서 한번 보시길 강력 추천한다. 문학이 못다 한 것을 영화가, 영화가 못다 한 것을 문학이 해주고 있다는 것을 너끈히 느끼게 해줄 작품.
더이상 모르지 않겠다는 용기. 기억할 것들을 기억하겠다는 다짐. 이 책에 깃든 '지극한 사랑의 힘'이 내게서 이끌어낸 것들이다. 이 땅을 딛고 살면서 한 번쯤은, 고요하고 거세게 몰아치는 이 작품에 다녀와주시길. 그래서 남은 자들이 자꾸만 돌아볼 수밖에 없는 것의 정체를 함께 목격해주시면 좋겠다.
꿈과 희망으로 가득 찼던 젊음은 사라지고 남은 건 양육비와 파산 위기의 통장 잔고 그리고 밀린 숙박비 뿐인 40대 중년 무직 남자의 하루. 비극 앞에서 비로소 마주하는 현실과 삶. 200페이지의 짧은 이야기지만, 그 여운은 삶의 매순간 서려 있을 것. '희망을 버려. 그리고 힘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