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저/정영목 역
열린책들
폴 오스터 1주기에 맞춰 출간되는 『바움가트너』는 은퇴를 앞둔 노교수 사이 바움가트너를 통해 상실과 애도, 기억과 현재, 시간의 흐름과 삶의 의미를 내밀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폴 오스터의 초기작들을 연상시키면서도 삶의 막바지에 이른 작가의 원숙한 사유를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은 이 소설은 이상한 사건 사고가 연달아 일어난 어느 날, 까맣게 그을린 냄비를 바라보던 바움가트너에게 문득 인생의 사랑이었던 아내에 대한 기억이 점화되며 시작된다.
〈정원사〉라는 뜻을 가진 그의 성씨처럼, 바움가트너는 기억의 정원을 걸으며 나뭇가지를 뻗듯 얽혀 있는 삶의 단편들을 하나하나 찾아가기 시작한다. 소설은 1968년 뉴욕에서 가난한 문인 지망생으로 아내를 처음 만난 이후 함께한 40년간의 세월, 뉴어크에서의 어린 시절, 옷 가게 주인이자 실패한 혁명가였던 폴란드 출신 아버지에 대한 회상까지 여러 장면들과 에피소드들을 펼쳐 보이며 한 인물의 내밀한 서사를 따라간다. 『4 3 2 1』(열린책들, 2023) 이후 6년 만에 펴낸 장편소설이면서 그와 대조적으로 200면 남짓한 짧은 작품으로, 폴 오스터가 평생 동안 다뤄 왔던 주제인 글쓰기와 허구가 만들어 내는 진실과 힘, 그리고 우연의 미학에 대한 사유를 간결하고 섬세하게 집약하고 있다. 생의 끝에 서서 찬찬히 들여다본, 삶을 둘러싸고 있는 관계와 사랑에 대한 애틋한 서사가 깊은 여운을 안겨 주는 폴 오스터의 생애 마지막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