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이 등장하기 전, 피처폰을 돌려가며 하는 게임 [놈(NOM)] 기억하시나요?
화면을 회전하며 캐릭터가 벽을 타고 달리는 그 장면에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세상에 없던 조작법이었죠. “폰을 왜 돌려?”라는 의문이 곧 열풍이 되었고, 2003년, 그 시작에는 한 사람의 기획자가 있었습니다. 신봉구 기획자였죠.
그런데 그의 행보가 특이합니다. 게임빌(현 컴투스홀딩스)에서 2013년까지 근무하다 퇴사한 뒤, 지금은 음악, 전자책, 메타버스 게임 등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기 시작했습니다. NFT가 투기라 불리던 시절, 그것을 ‘창작의 기술’로 보았고, 전자책이 한물간 산업이라 할 때, 안에서 다른 파이프라인의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놈〉에서 NFT, 그리고 음악과 전자책까지. 그의 여정은 늘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실험이었는데요.
세상을 ‘돌려서’ 보는 기획자, 신봉구 작가를 직접 만났습니다. 그의 이야기가 많은 이들에게 또 다른 영감의 회전을 남기길 바랍니다.
- editor 김혜연 (경제 · 경영 MD)
원래 전공은 미술이었어요. 교수님이 화장품 회사 패키지 디자이너 자리를 추천해주셨죠. 그런데 제가 아주 건방지게 “저는 음악을 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학교에 실용음악과가 생기면 그때 불러주세요” 한마디 남기고, 포트폴리오도 후배들에게 다 주고 떠났어요.
그때는 PC통신 ‘하이텔’ 시절이라, 음악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곳을 검색했죠. 그런데 ‘게임 회사에서 사운드 담당 모집’ 공고가 있더라고요. 아케이드 게임 회사였어요. 그게 제 첫 번째 직장이 됐습니다. 숙식도 같이 하고, 형·동생처럼 지내면서, 여름에 반팔 입고 출근해서 겨울에 반팔 입고 퇴근할 정도로 일만 했습니다. 그땐 온라인이나 모바일 게임이 없었어요. 오락실용 아케이드, PC 패키지 게임이 전부였죠.
하지만, 개인적으로 새로운 판을 짜고 싶었습니다. 당시 게임은 일본 게임을 따라하던 시절이었거든요. 어느 날 포장마차 회식 자리에서 사장님께 솔직하게 물었어요.
“사장님, 우리 회사는 맨날 일본 게임만 베끼잖아요. 그럼 일본 게임 망하면, 우리도 망하는 거 아닌가요?”
그 말 듣고 사장님이 폭발하셨어요. “니가 월급 줘? 니가 사장이야?” 그래서 전 “안녕히 계세요” 하고 바로 퇴사했습니다. 그날 이후, ‘남이 만든 걸 흉내 내는 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그게 게임 ‘기획자’로서의 첫 출발이었어요. 남이 만든 규칙 안에서 놀던 사람이 아니라, 새로운 판을 짜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거죠.
퇴사하고 나서 한동안 방황했어요. “이제 뭘 해야 하지?”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다가, 집 근처에 ‘게임빌’이라는 회사를 발견했어요. 그땐 아무도 모를 때였죠. 그런데 구인 공고에 이런 문구가 눈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무조건 창의적인 사람 구함.”
그 문장 하나가 제 마음을 잡았어요. ‘이건 내 전문인데?’ 싶어서 바로 면접을 보러 갔죠. 그런데 제가 좀 직설적인 편이라… 면접 자리에서 게임빌 회사의 게임을 보고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건… 게임이 아닌데요?”
지금 생각하면 참 무례했죠. (웃음) 그런데 사장님이 화를 내지 않으시더라고요. 오히려 담담하게 그러셨어요.
“그럼 당신이 한번 만들어보시죠.”
그렇게 해서 게임빌에 입사하게 됐고, 제가 처음 만든 게임이 바로 『놈』이에요.
그때가 모바일 시장이 막 열리던 초창기였어요. 『놈』은 휴대폰을 돌려서 하는 게임이었거든요. 그게 모바일에서만 되잖아요. TV는 못 돌리잖아요. 그게 핵심이었어요.
당시 모바일 디바이스 스펙이 굉장히 열악했어요. 『놈』 캐릭터가 빨리 달릴 수가 없었죠. 그래서 배경을 아예 생략했어요. 대신 ‘배경이 흐른다’는 느낌을 주기 위해 밑에 점선을 넣었는데, 그게 그림이 아니라 코드로 찍은 점선이에요. 캐릭터도 딱 두 프레임짜리였죠. 그걸로 속도를 냈어요.
사람들이 “이 조그만 폰에서 어떻게 이런 속도가 나오지?” 하면서 놀랐죠. 저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원버튼 조작만으로 게임을 설계했고, 그 자체가 게임의 철학이었어요. 게다가 『놈』은 게임을 하는 모습 자체가 마케팅이 되는 게임이었어요. 버스나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돌리고 있으니까, 옆에서 “그거 뭐야? 왜 돌려?” 하면서 입소문이 났죠. 그렇게 삽시간에 퍼졌어요. 모든 게 계산된 디자인이었어요. 이름도 단순하게 ? “뛰는 놈, 달리는 놈.” 그게 『놈』이죠.
왜 갑자기 전자책이냐고요? 저는 전자책을 ‘출판업’으로만 보지 않아요. 디지털 콘텐츠 산업으로 봅니다. 결국 파일이니까요. 자동 결제되고, 자동 전송되고, 유튜브처럼 구독자 천 명 모을 필요도 없고요. 올리면 바로 팔리고, 돈도 바로 들어오잖아요.
그래서 저는 종이책은 절대 안 해요. 무조건 자동화된 시스템, 판매부터 입금까지 손댈 일 없는 구조 ? 그게 제 스타일이에요.
게다가 전자책은 접근이 너무 쉽습니다. 디자이너도, 프로그래머도 필요 없어요. 워드프로세서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MS워드만 있어도 바로 만들 수 있어요. 저한테 전자책은 ‘출판’이라기보다 가장 단순하고 효율적인 디지털 비즈니스 모델이에요. 그래서 전자책 출판을 시작했어요. 무엇보다, 아무한테도 터치 받지 않고 혼자서 완전히 창의적인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으니까요.(...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