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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랑한 정신과
윤우상 저 |포르체
유쾌하고 뭉클한 정신과 진료일지
웃으면서 읽다 책을 덮을 즈음에는 울컥해서 눈물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윤우상 의사가 정신과에서 환자와 만나온 30년의 기록. 때론 위험하고, 황당하지만 특별한 사건은 아니다. 우리도 저마다 조금씩은 이상하니까.
2025.12.19 손민규 인문 PD
책속으로
여기에 나오는 에피소드는 모두 내가 직접 겪은 일이다. 물론 인물이나 이야기는 각색되었다. 내용을 더하기도 하고 빼기도 하고 섞기도 했다. 그래서 각 에피소드는 오롯이 한 인물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때로는 몇 사람의 이야기가 합쳐진 퓨전일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특별한 삶이, 그 이야기가 희화화되지 않도록 조심했다. 진심을 다해 내가 만난 그분들의 삶을 보여 주고자 애썼다.
--- 「프롤로그」 중에서

어느 날, 내가 말했다.
“만재 씨, 이번에는 지구 지키라는 소리 들려도 왁꾸를 맞추지 말아 봐요. 어떻게 되는지 보게요. 정말 지구가 멸망하는지 말이에요.”
만재 씨가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원장님, 지구 종말을 막는 건 한 번 해 보고 말고 할 게 아니잖아요. 지구가 망하는데, 망하는지 안 망하는지 한 번 해 보라는 게 말이 되나요?”
음. 그건 그러네. 나는 더이상 대꾸할 수 없었다.
--- 「지구를 구한 사나이」 중에서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고 해도 남들에게 드러날 정도가 아니기에 멀쩡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정신병뿐만 아니라 불안증이나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갖고 있다. 그 정도가 나를 힘들게 하고 남을 괴롭힐 때 문제가 된다. 정신적인 문제는 특별한 사람들만 갖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 갖고 있다. 나도 큰 문제 없이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지만 언제든지 비정상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 「누구나 살짝 미칠 때가 있다」 중에서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생각한다. ‘나는 톱니바퀴의 하나다. 내가 빠져나가면 모든 톱니바퀴가 삐걱거리고 가족의 시스템이 고장 난다. 내가 이 역할을 멈추는 순간 잘 돌아가던 세상이 망가진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한다. 죽을 만큼 괴로워도 버텨야 해.’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자리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아예 세상에서 탈출해 버린다.
--- 「삶이 버거울 땐 공간을 바꾸자

“내가 말을 못 해서 이 병에 걸렸나 봐. 정말 이야기하고 싶었어. 내가 본 것, 내가 느낀 것, 내가 한평생 시골에서 농사만 지으면서 살았잖아. 그래서 아들 둘에 딸 하나 잘 키웠지. 그러다 70년 만에 외국 땅에 간 거야. … 돌아와서 이 이야기를 참 하고 싶었나 봐. 참지를 못하겠더라고. 내가 주책없는 걸 알면서도 사람만 보면 여행 이야기를 하게 되는 거야. 옆에 있는 마누라가 늘 말리고 눈치 주고 집에 와서는 구박했어. 동네에 여행 간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 당신이 그렇게 자랑하면 남들은 어떻겠냐고. 뒤에서 욕먹는다고. 할멈 말이 맞지. 그런데 말 안 하는 게 너무 힘든 거야. 그때부터 가슴이 답답하고 얹힌 거 같고 가슴이 벌렁거리고 그랬어. 한숨도 나오고. 허, 그런데 원장님하고 이야기하니 가슴이 시원해졌네. 허허허. 이제 동네에서 이야기 안 해도 될 거 같아. 말을 못 해도 이런 병에 걸리나? 거, 참. 신기하네.”
--- 「코끼리 때문에 병 걸린 할아버지」 중에서

“아니, 윤우상! 팬티가 그게 뭐야? 팬티 안 갈아입고 다녀?”
팬티를 보니 앞부분이 상당히 노랗다. 갈아입을 때가 되었다…. 당시 팬티는 새하얀 러닝셔츠 같이 모두 하얀 면 팬티였다. 그러니 앞부분에 오줌이 조금만 묻어도 노래진다.
교수님의 팬티 지적질에 살짝 기분이 나빴다. 팬티에 오줌이 묻어서 노란 게 당연한 거지, 왜 남의 팬티 갖고 뭐라 하시지? 그래서 약간 반항심이 생겨서 툭 한마디 했다.
“교수님, 전공의 팬티 갈아입는 거까지 신경 쓰십니까?”
교수님이 약간 이외라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바빠도 그렇지. 팬티는 갈아입어야지. 그렇게 누런 팬티를 입고 다녀? 언제 갈아입은 거야?”
“한 일주일 된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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