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쉬트 07769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저/구소영 역
|알마
- 2025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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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의 소설. 가상 마을 ‘카나’를 무대로, 파멸과 종말을 예감하는 인간의 불안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바흐의 푸가처럼 반복과 변주로 쌓아 올린 문장은 세계의 균열을 음악적으로 감각하게 한다.
2026.01.09 소설/시 PD 김유리
지금 사시면?
[2025 노벨문학상] 사탄탱고 노트/패브릭 독서대 (포인트 차감)
- 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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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안, 우주는 유대인들이 알아낼 수 있도록 내버려두고, 넌 좀 더 실용적인 일에 힘을 써, 예를 들어 국가의 가사 한 줄, 한 줄까지 빠짐없이 알고 있는지, 국가를 완전히 알고 있는지나 신경 써, 왜냐면 알고 있어야 하니까, 그리고 독일인은 항상 시작부터 시작해야 해, 이해가 가냐? 그리고 세 번째 연이 아니라, 어떤 진보 범죄 갱단놈이 우리에게 이런 어거지를 쎄워 갖고, 우리 국가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부를 수도 없게 나불거려,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고, 그 개자식들, 우리에게는 여기 모든 것의 시작점이기 때문이야,
--- pp.21-22
나는 선생님이, 쾰러 씨가 나에게 보여준 내용의 본질에 사로잡혔나 봅니다, 그리고 지금은 아주 걱정이 됩니다, 말하는 것 같았다, 자자, 쾰러 씨가 손짓으로 막아섰다, 너는 걱정할 필요가 없어, 이 친구야, 언젠가 양자물리학자들이 다 알아낼 테니까, 다만 우리는 살아서 그날을 보지는 못하겠지만, 그러게, 그게 그래요, 플로리안은 큰 하늘색의 두 눈동자로 그를 서글프게 바라보며 말했다, 그게 저는 두려워요, 내가 살아서 그걸 보지 못할까 봐, 하지만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어, 집주인은 고개를 가로젓고, 안경을 매만졌다, 하늘을 봐, 저 구름을 봐, 이렇게 들어오는 햇살을 봐, 이것들은 다 만져지는 실제적인 것들이야, 너는 이 모든 진공 문제니 뭐니에 너무 깊이 정신을 팔 필요가 없어, 결국 네가 아예 완전히 잠겨 헤어나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특히 너를 무겁게 짓누르는 것은 양자물리학의 무력한 실패가 아니라 제한적인 인간 정신의 파탄인 탓이야, 말해주었지만 플로리안에게는 다 헛되었다, 플로리안은 한 가지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들었기에, 쾰러 씨가 리히텐베르크 중등학교 지하실에서 2년 동안 매주 화요일마다 그에게 설명해주던 모든 것에 확 사로잡혀, 정확하게, 그리고 일깨우는 계몽의 빛처럼, 마치 선동의 불길처럼 세차게 강압적으로 사로잡는지라, 그런 만큼, 플로리안은 가만히 정지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거기 가만히 멈춰서서, 그러고 나서 그는 가라앉았다, 그는 그야말로 영원히 그 속에 침몰했다.
--- pp.35-36
폴크난트 씨는 플로리안을 보자 외쳤다, 어쩌나, 우리도 난처해, 오늘도 자네 앞으로 아무것도 오지 않았어, 이 말에 플로리안은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오, 그 일로 온 게 아닙니다, 그는 새 봉투를 가리켰고, 맙시사 시상에나, 제시카는 그가 봉투를 건네자, 수신인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또야?! 플로리안, 저렇게 높은 곳에 있는 분들은 이런 편지를 읽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 못 해? 우리는 가까이 가지도 못해, 알잖아, 그들은 저 위에 자리하시고, 그녀는 천장을 가리켰고 이어서 땅을 가리키며 덧붙였다, 우리는 여기 아래에 있어, 알겠어요? 그러나 플로리안은 미소만 띠고 80유로센트를 세서 주었다, 그는 이런 경우는 절대 그렇지가 않다, 그리고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앙겔라 메르켈은 평범한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확신했다, 더욱이 지난 며칠 동안 그는 자신의 첫 편지가 늦건 빠르건, 관료적 미로를 거치건 아니건, 수취인에게 기필코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을 품고 있었기에 첫 편지에 대해 한결 마음이 차분했다, 도달만 하면 총리가 수천 개의 업무 중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 고심하지 않을 수가 없을 터이다, 이 문제는 아주 중요하기에,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에, 총리가 이것을 이해한다면, 플로리안도 총리가 충분히 이해하도록 하는 한 최선을 다했으니, 그녀는 한순간의 지체도 없이 안보리를 소집할 것이 완전 확실하다, 왜냐하면 당연히 그녀, 앙겔라 메르켈은 이 문제를 혼자서 처리할 수 없고, ‘불행히도’ 모든 국가원수가 필요했다, 아니, 적어도 가장 중요한 사람, 최고 의사결정권자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지체는 용납되지 않으니 번개처럼 빠른 속도로 처리하리라.
--- pp.42-43
그들은 서커스가 아니라 전쟁을 원했다, 우리가 두려워할 것은 이민자가 아니다, 보스가 말했다, 매일같이 이민자가 이러니, 이민자가 저러니, 저들이 식탁보로 머릴 두른 사람들, 틀어 올린 머리에, 베일 쓴 사람, 연통 아편쟁이들을 다 들여보내 독일을 이런저런 식으로 다 빼앗아 가버릴 거라고 찧고 까부는 놈들과 달라, 죄 개나발이야, 그는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이민자에게 집중하지 않아, 우리는 유대인에게 집중해, 그들은 우리의 것을 ‘이미’ 다 빼앗아 갔으니까, 아닌 건 아니지, 아니야, 우리는 다른 그룹과 동맹을 맺을 이유가 없어, 우리가 대단하자고 이러지 않아, 우리는 독일이 다시 위대해지기를 원하는 거지, 이것이 우리의 사명이야,
--- p.47
하긴 플로리안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보스에게 어떤 의미인지 잘 알고 있었다, 보스에게 바흐는 단순히 많은 작곡가 중 한 사람이 아니라, 그의 눈에는 하늘에서 내려주신 천상의 존재, 예언자이자 성인이었다, 그들이 호시기를 맞아 기분이 좋으면 플로리안에게 자주 언급했듯이, 〈독일 정신의 본질이 뭔지를, ‘최고의 이상’이 어떻게 독일 땅과 연결되는지 모든 음표에 또박-또박-새-겨-넣-은 인물이었고, 보스가 부대의 깃발에 그려 넣고 싶어 하는 인물은 다른 부대가 다들 그러듯이 히틀러도, 뮐러도, 되니츠, 모델, 디트리히도, 심지어 디넬도 아니라 바흐였지만, 반대의 질타에, 다른 이들은 히틀러, 뮐러, 되니츠, 모델이 낫다, 심지어 디넬이라도 괜찮다는 야유에 묻혀버렸다.
--- pp.52-53
일이 지금까지 흘러가던 대로 계속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기에 여기 온 거야, 나는 이미 늙었다고 할 수 있어, 사실 맞는 말이지, 더 이상 매주 기꺼이 너를 도와줄 처지가 못 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그게 아니다, 보아하니 이미 너는 있을 법한 대격변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려두고서 거기다 도로 나를 가져다 대고 있는데, 하지만 이 그림은 틀렸고, 그중에서도 네가 나에게 언급하는 그런 일들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야, 지금 네게 말하는 바는, 내가 아벤트슐레에서 2년 내내 네게 했던 말은, 여기서 네가 주워들어 이해한 내용이 전혀 아니야, 보거라, 네가 그린 세계 개념은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전적으로 자네 혼자 생각인 거지, 이런 생각으로 더 큰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네게 꼭 네가 틀렸다고, 올바르지 않다고 경고해야겠다, 너는 나에게서 들은 내용에서 완전히 용납할 수 없는 결론을 내리고 있어, 하지만 그 일로 내가 힐난과 손가락질을 받게 되겠지, 이미 사람들이 마을에서 이를 두고 수군거리고 있어서 입맛이 영 써, 내가…… 이를 작금에, 부분적으로는 네 덕분이라고 인정한다만, 거대한 블랙홀을 계산하는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보완할지는 모르겠으나, 이 속으로 나는 반물질이 사라지지 않았을까, 의심하고 있긴 해도, 우리는 그게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지, 하지만 이것은 단지 취미로 삼은 일일 뿐이야, 왜냐하면 내가 주로 관심 두어야 할 데는 기상 관측소이지 양자장이론이 아니고, 너의 우선 관심 대상은 너희 회사 차량에 쓰인 대로, 알레스 비어트 라인(ALLES WIRD REIN, 모든 것이 깨끗하리라)이야, 그런 식으로 그대로 머물러 있어야 한다, 이건 잘되라고 해주는 작은 충고이긴 한데, 네가 이 충고를 받아들이든 들이지 않든, 하지만 네가 내 말을 귀담아들었다면 받아들일 것이고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 pp.112-113
아무리 터무니없고 터무니없어도……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한동안 주말과 평일 늦은 오후에 역으로 나갔고, ‘앙겔라 메르켈’이라고 적힌 팻말을 만들어 예나에서 기차가 도착하면 팻말을 마지막 승객이 내릴 때까지 아주 높이 공중에 들고 서 있었다, 그러나 앙겔라 메르켈은 도착하지 않았고, 게다가 얼마 안 되어 보스만이 기차역에 나가서는 그를 지분거리며 놀릴 뿐만 아니라 그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그랬다, 물론 플로리안이 기차역에서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줄 아느냐, 이놈이 메르켈이 기차로 이곳에 온다고 생각한다더라, 그런 식으로 카나에 빠르게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우스갯소리들이 점점 더 비 쏟아지듯 쏟아지자, 플로리안은 당연히 기차역에 가는 것을 그만두어야겠다, 그리고 가능하면 반호프슈트라세도 피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에 이르렀고, 전반적으로 그는 마을에 오가는 사람들로 바쁜 동안에는 어딘가에 숨어 있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로자리오나 링어 부인에게 감히 가지 않았지만 링어 부인이 어느 날 네토 마르켄-디스카운트의 통조림 선반 앞에서 그를 붙잡았다, 나도 더는 네가 이해가 안 간다, 그녀는 걱정이 잔뜩 드리운 표정으로 말했다, 기차역에서 너 뭐 하는 거야, 플로리안?! 그러자 그는 고개를 떨구고, 해명조로 웅얼거렸다, 총리가 도착할 경우를 대비해 자신은 그곳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총리가 어떻게 그를 알아볼 수 있겠는가? 누가 도착한다고?! 링어 부인은 화가 나 목소리가 올라갔다, 앙겔라 메르켈이 여기에 올 거라고 진짜로 생각하는 건 아니지?!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진짜로, 플로리안이 대답했다, 그도 이를 믿는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다, 링어 부인, 그는 출구에서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이제 고개를 들고서, 저에게 이걸 믿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요, 그리고 완전히 불가능한 일만은 아녜요, 플로리안, 잘되기를 빈다! 링어 부인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하며, 한편 쇼핑백을 던지듯 쾅 놓고서 그를 붙잡고 그의 팔을 흔들기 시작했다, 정말 잘되기를 빈다! 정말 잘되기를 빌어! 이는 플로리안이 조심스럽게 몸을 뺄 때까지 계속되었다.
--- pp.193-194
늑대의 출현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모두가 늑대 한 마리가 아니라 늑대 떼에 대해 이야기했고, 뒤이은 다른 공격들에 대한 뉴스도 퍼졌고 사람들은 브란덴부르크, 바이에른, 폴란드, 체코를 저주했다, 경찰도 저주하고 주 정부도 저주했지만 무엇보다도 NABU를 저주했다, NABU의 존재를 첫 번째 공격 이후에야 알게 됐지만 이 기관은 곧 카나 주민들의 주요 표적이 됐다, 그렇고말고, 그리고 유대인도, 영웅이 마침내 부르크에 모습을 드러내고 선언했다, 어쩐 일인지 부르크 사람들은 2주 동안 보스 코빼기도 보지 못했는데, 정확히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딱 그만큼, 그가 말했다, 하지만 적어도 그는 삼류 칠장이와 늑대들이 하나이고 동일하다는 것을 안다, 동지들이 이해가 안 가 멀뚱한 얼굴을 하자, 보스 얼굴이 짜증으로 시뻘게졌다, 뭐야, 또 이래, 여기서 이해가 안 될 게 뭐 있어?! 너희들 아직도 모르겠어?! 그리고 그는 답답하다는 듯 두 팔을 크게 벌렸다, 그리고, 아니, 돌아오는 대답은 침묵이었다, 2주 후에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정말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여기에는, 동지 여러분, 음모가 있다고 생각한다, 보스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우리는 여기서 무슨 후드 티 입은 날건달, 바흐 벽에다 무작위로 뿌려대고 있는, 얼마나 있는지 모를 이놈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게 아니야, 여기에 공격이 시작되었어, 너희들은 알지, 누구를 향한 무엇에 대한 공격인지?! 그는 사람들을 하나씩 쳐다보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읽을 수 있는 내용은 그들이 그로부터 대답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 pp.262-263
누군가는 보스를 보호해야 한다, 플로리안은 엄청 서두르며 발을 내디뎠지만, 가서 말을 할 사람이 없었다, 너무 늦었다,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그는 집으로 걸어갔고 8층으로 올라가 옷을 벗고 벗은 옷을 모두 걸었다, 그는 창문 손잡이에 코트를 걸고 욕실의 건조대에 바지를 걸고 모자와 풀오버와 셔츠를 라디에이터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전히 젖어 속옷과 양말까지도 욕조 가장자리에 펼쳐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재채기를 시작하여 마른 옷을 입은 후 얼른 커피를 만든 다음 부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창유리에 부딪히는 빗방울을 바라보았다, 대신에 빗방울을, 노키아가 아니라 빗방울을 보고 있자, 왠지 그는 지금은 핸드폰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 노키아에 무엇인지 모르지만 무언가 문제가 있었다, 그냥 무언가 아귀가 맞지 않았다, 창유리와 굴러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는 것이 낫다, 진짜 노키아에 아예 눈 돌리지 말자, 하지만, 다섯 통의 대화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기는커녕 한 통의 대화도 없었다, 전에는 플로리안은 휴대 전화를 가질 수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중고이지만 하늘색이고 중고이지만 너무 아름다웠고 완벽하게 작동했고 멋진 사진도 찍을 수 있었고 지문 인식기이며 모든 것이 딸려 있었지만 다만 뭔가 어긋났다, 그의 뇌는 계속 다시 또다시 이 무언가로 되돌아갔고, 아무리 막아보려고 애를 써도, 창문 아래로 굴러가는 빗방울에만 주의를 기울이려고 노력해도 소용 없이, 그는 아주 오래 버틸 수 없이, 그의 생각은 계속 노키아로 돌아갔다, 그는 열기가 몸을 훑으며 오르는 것을 느꼈다, 커피 때문이 아니었다, 얼굴이 이미 발개진 것을 알았다, 무언가가 속이 언짢게 뒤틀릴 때 그의 얼굴이 항상 빨개진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은 무언가가 정말로 괴롭히고 있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그는 그 다섯 대화와 관련이 있으리라 짐작했다, 다섯 대화가 있다는 데 왜 그렇게 마음이 어지러운가? 플로리안은 스스로에게 물었다, 다섯 대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답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다섯만이 아니라, 하나도 없었다고, 그런 비슷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나 보스가 그에게 다섯 번을 했다고 하자고 요구했고, 당연히 그는 예라고 대답했다, 누가 물어보면 지금도 예라고 대답하겠지만 아무도 그에게 묻지 않았고 전에도 아무도 그에게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왜 지금 그에게 이걸 물어보겠는가? 아, 아니다, 그는 고개를 가로젓고, 여기 뭔가 다른 일이 있다, 내일 장례식 때 보스에게 물어봐야겠다고 했지만 보스에게 묻지 않았다, 장례식장에 다 합쳐서 두 명밖에 없었고, 보스는 그들이 다른 장례식에 잘못 왔나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뭐 하자는 거냐, 보스가 말했다, ㅆㅂ 다 뒈져라, 그리고 기나길게 욕설이 뒤따랐다, 카나에 묘지가 하나뿐인 것 맞나? 아니면 내가 뭘 놓쳤어?! 그리고 그는 플로리안을 쳐다보았다.
--- pp.443-444
아이는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마신 후 플로리안이 그를 경찰에 넘기지 않으면 어떻게 된 일인지 다 설명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주절주절 빠르게 털어놓았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자원봉사 일을 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몇몇 면에서 NABU가 늑대들을 대하는 방식에 마음에 맞지 않았다, 그들은 늑대들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사랑하지 않았고, 그들에게 늑대들은 망할 데이터에 불과했고, 그들이 쫓는 건 벌 어떻게 하면 눈먼 공돈, 콩고물, 정부 지원금을, 보조금을 탈까 그 생각뿐이었기 때문이다, 플로리안은 소년을 쥐고 흔들었지만, 이후로는 소년은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별무소용으로, 소년은 온통 분노로 불타고 있었다, 그래서 플로리안은 그에게 이것이 도대체 바흐와 무슨 관련이 있는지 물었을 때 처음에는 하던 모든 말이 기침하느라 잠겨,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플로리안은 정말로 쥐었던 목을 놓아주고 그의 재킷 뒷덜미만 붙잡고 있었다, 소년은 잠깐 기침을 컥컥 뱉어내고, 분노로 시뻘게져 플로리안 얼굴에 거의 침 튀기듯 버럭거렸다, 바흐라니 뭐? 제기랄 그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는 그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데, 뱉은 말에 허걱 숨을 들이키고, 플로리안이 누가 이렇게 하라고 시켰냐고 묻자, 얼굴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놈들이 누구인지 난들 ㅆㅂ 어떻게 알겠어? 소년은 말했다, 그냥 그들이 전화하고, 장소를 알려주면 내가 작업에 들어갔다, 아니, 일 절반을 마쳤다, 왜냐면 그들은 WIR KOMMEN(우리는 온다)을 쓰기를 원했는데, 그는 WIR까지만 하겠다고 떠맡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의 트레이드마크 늑대 머리를 그려 넣어야 했고, 늑대 머리 없이는 그 일도 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KOMMEN까지 뿌리는 데 너무 오래 걸리기도 해서 그 정도에서 합의를 봤다, 이제 똑똑히 이해가 가느냐?! 얼마나 받았어? 하나 끼적이면 50, 왜 너냐? 이게 마지막 질문이었고, 내가 최고라서라는 대답이 돌아왔고 그리고 대화는 끝났다, 소년은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다 똑같다는 듯이, 계속 고개를 씁쓸하게 흔들고 또 흔들었다, 하는 수 없다면 될 대로 되는 거지 뭐,
--- pp.545-546
그는 5월의 온화함 속에 덤불이 무성하게 웃자란 언덕배기 위에, 혹은 세상으로부터 숨은 깊은 숲속에 누워, 그는 하나씩 〈마태 수난곡〉과 합창곡, 〈볼템페리어테스 클라비어〉, 〈골드베르크 변주곡〉, 관현악 소나타, 모음곡, 파르티타, 칸타타 등으로 이어가며 모두 섭렵했고, 최후의 심판에 대한 구제책이 과학 안에 그리고 그쪽을 토대로 생성된 정치에 있지 않고, 그 구제책은 전적으로 그리고 유일하게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게, 그러니까, 바흐의 작품이 그 구조를 관통해 이어지는 길에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구조는 완벽했으며, 따라서 구조가 완벽하다면 이를 토대로 세워진 주제도 완벽했고, 이러한 주제가 완벽하다면 이러한 주제를 구현하는 음정의 관계도 완벽했고, 이러한 음정들 관계가 완벽하다면 모든 음 하나하나가 완벽했다, 말인즉슨, 필경에는 플로리안이 이러한 고요한 순간순간에, 이런 분분마다, 때로는 여러 시간에 이른 결론이 제바스티안 바흐에게는 악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허,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위험과 서로 맞서 버틸 수 있다, 바흐의 예술에는 단순히 악이 결핍되었다, 바흐가 창조한 예술은, 우주와 달리 어떤 것으로도 파괴될 수 없었다, 바흐의 작품에는 우연이란 없었다, 하지만 이런 기원을 이룬 앞선 시기가 아니라, 작품이 탄생한 순간부터 이후로, 불확정의 우연이란 절대 없으며,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변화도 없을 것이다, 바흐는 안정된 구조였고 영구히 그렇게 남을 것이다, 이상(理想)처럼, 동화에 나올 것 같은 수정처럼, 물방울의 표면처럼, 그 안정성은 불가해하고, 그 완벽성도 불가해했다, 당연히 묘사는 할 수 있지만, 파악할 수 없었다,
--- pp.554-555
피를 흘리느라 어지럼증이 치는 장난도 아니었고 아까부터 쩌렁쩌렁 바흐 시편이 울려대던 까닭도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림자가 아니라, 실제로 거기에 무언가가, 그것도 두 개가 더 멀리 뒤편 벤치 앞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충분히 가까워져 그가 뒤편 벤치 앞에 두 마리의 늑대가, 더 정확하게는 한 마리는 앉아 있고 다른 한 마리는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아보자,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하지만 너무 어지러워서 즉시 앉아야 한다는 것을, 그러지 않으면 그가 쓰러지리라 알았기 때문에, 마지막 힘을 짜내 그는 두 동물이 그를 공격할 경우를 대비해 동물들을 막아내려고 안간힘을 써 근육을 긴장한 채 더 가까운 벤치를 향해 조심스럽게 한 걸음 내디뎠다, 하지만 둘 다 움직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한 걸음 더 디뎠다, 이 정도 거리에서 두 동물이 그가 거기에 있든 말든 관심이 없다는 것이 분명해져, 그는 최대한 숨을 죽이고 다가갔다, 그러나 늑대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더 가까이 있던, 앉아 있던 늑대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지만 으르렁거리지 않고 잇몸을 살짝 당기고, 이빨이 조금 보일 정도만 드러냈지만 도로 내리고, 플로리안은 그들 중 하나일 뿐, 두려워할 필요 없다는 듯이 고개를 다시 원래대로 돌렸다, 플로리안은 늑대들이 잘레 강물을 바라보고 있다는 인상만 주었을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왜냐하면 힘이 다 빠져서 늑대들 옆 빈 벤치에 아주 천천히 주저앉으면서 두 늑대 역시 힘이 다했으며, 눈이 있을 자리에 곪아서 고름이 흐르는 구멍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그때 갑자기 시편이 플로리안의 머리에서 침묵을 지켰다, 어지럼증과 고통으로 그는 눈을 감았다, 그러고 나서 늑대들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자신도 이 시점부터 그렇게 하고 있듯이, 귀만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이 시점부터 이들 셋 모두 아주 자차분하게, 다정하게, 졸졸대며 흐르는 잔물결 소리를 몇 걸음 안 떨어진 곳에서 대지 위에 내려앉은 무자비한 밤에 눈을 감고 영원히 듣게 될 것이라고 깨달았다
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
임경선 저
|토스트
- '글쓰기의 태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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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의 저자 임경선이 전업 작가로 살아오며 깨달은 ‘글쓰기’의 본질. 누구나 글을 쓰는 시대에 지난 20년간 쓰는 사람으로서의 냉철한 사유를 전한다. 글쓰기라는 행위를 오랫동안 마주해 온 작가의 솔직한 고백과도 같은 책.
2026.01.09 에세이 PD 이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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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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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고 싶어 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일렁이는 마음을 헤아려본다. 글이라는 것은 확실히, 너무나 ‘요물’이다. 멀쩡한 사람을 취약하게, 그 앞에서 작아지게 만든다. 그만큼 글은, 정확히는 잘 쓴 글은 어마어마한 힘과 압도적인 매력을 가진다.
--- p.8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정확히 알아야 문장과 표현들이 명료해지는데, 우리는 그것을 두고 ‘표현력이 부족해서’ ‘어휘가 달려서’ ‘그냥 막혔다’고 착각한다. 실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가 애초에 내면에서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 p.31
10대 시절 마냥 행복했던 이들은 훗날 글을 쓰지 않을 것 같다. 각자의 방식으로 부대끼거나 상처 입거나 힘겹게 보낸 사람들이 나중에 자라서 작가가 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 p.37
영감은 ‘거슬리는’ 감각이다. 내 안에 누적된 어떤 장면과 감각이 평소엔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다가 외부의 사소한 자극과 만나 파장을 일으킨다. 이때 느끼는 특별함에는 뭔가가 딱 맞아떨어지고 완전한, 우연인데 운명처럼 보이는 확신이 있다.
--- p.41
예술 분야의 일에서는 부족한 재능을 후천적인 노력이 채워주는 경우도 있지만, 어느 정도 선천적인 재능이 없으면 지속적으로 애쓰는 것 자체가 고역이다. 재능이 없으면 열정도 오래 못 버티고, 그러면 실력이 늘면서 재능이 ‘발휘’되는 기회도 얻기 어렵다. 열정에 비례하는 좌절과 불안만 강해질 뿐이다.
--- p.59
‘남들은 다 잘나가는데 나만 이렇게 초라해’라고 느껴질수록 무심함이 필요하다. 스스로를 외부로부터 보존하는 것. 끊임없이 주변 모든 것들에 적당히 초연한 것. 휩쓸리지 않는 것.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식은 눈으로 보는 것. 시선을 안으로 돌리는 것. 그래도 괜찮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 pp.96-97
모든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 안의 아름다움을 들여다보고 발견할 수 있는 사람, 그래서 또 아침에 일어나면 새 마음으로 그 일을 하러 제 발로 걸어가는 사람. 아무래도 예술은 그런 사람들의 몫인 것 같다.
--- p.108
AI에게 고유한 글쓰기의 권한을 위탁한다면 애초에 글쓰기의 목적은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책을 출판하는 것’ 혹은 ‘수익 극대화의 가능성 모색’이 될지도 모른다. 자기 이름 박힌 책을 내고 나서 그게 많이 팔리기만 하면 그만인가?
--- pp.117-118
모든 저자들이 고유한 문체를 가진 것은 아니다. 고유한 문체를 지니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야 한다. 문체는 작가 자신이다.
--- p.135
하물며 실패하는 편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않는 것보다 낫다. 그러니 우리는 일단 해야 할 일-계속 써나가는 것, 계속 만들어나가는 것-을 하기로 한다. 언젠가는 내 작품을 알아봐주는 누군가를 만날지도 모른다. 아니, 누군가의 평가에 흔들리거나, 누가 알아봐주는 것을 예전처럼 중요하게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 p.179
얼마나 더 오래 글을 쓸 수 있을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그리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들뜨지 않고 주제 파악을 잘하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아주 조금씩 더 잘 써나가고 싶다. 나머지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이다.
어느 서민 여성의 삶, 노년, 죽음
디디에 에리봉 저/이상길 역
|문학과지성사
- 특별하면서도 평범했던 어머니의 삶과 죽음
-
『랭스로 되돌아가다』 디디에 에리봉 신작. 지방에서 노동자 계급으로 살았던 어머니의 최후를 지켜본 프랑스 철학자의 회고록이다. 노년, 돌봄과 연대, 불평등, 자본주의 등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2026.01.09 손민규 사회정치 PD
지금 사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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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그녀는 삶을 바꾸려 들지 말자고 자신을 납득시킬 수 있었을까? 아니, 차라리 이렇게 자문해보자. 혼자서 살아가려면 부딪혀야 할 갖가지 문제들이 지닌 무게, 또는 그저 슬픈 운명처럼 보이는 것 앞에서의 체념은, 어떻게 어머니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이 상황에서 도망치려는 시도를 마침내 포기하도록 이끌었는가?
--- p.49
알다시피 우리는 같은 방으로, 어쩌면 같은 요양원으로 오게 될 것이다. 어찌 됐든 그 점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언제 어떻게 오게 될지는 알 수 없다. 어떤 차를 타고서? 게다가 난 아이도 없는데 누가 데려갈까? 반려자나 아니면 나보다 어린 내 친구들? 의사가 급하게 보낸 구급차 운전수와 간호사들일까? 앞에 있는 이에게 “두고 봐요, 괜찮아질 거예요”라고 말하는 동안 우리는 다른 자리에, 즉 우리가 안심시키려고 헛되이 애쓰는 이 타자의 자리에 놓일 순간을 상상하며 몸서리친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진실을 듣는 편을 택하겠다고 다짐한다.
--- p.61
나는 자문했다. 이 여성은 누구인가? 청소년 시절, 성인 시절 그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녀는 ‘전업주부’였을까, 아니면 하나 또는 여러 직업이 있었을까? 그랬다면 어떤 직업(들)이었을까? 그녀도 노조에 속해 있었을까? 혹시 어머니와 같은 공장에서, 혹은 같은 공단의 공장에서 일했을까? 어쩌면 두 여성은 파업에 함께 참여했을 수도 있을까? 누가 알겠는가? 그녀는 정치적 참여 활동도 했을까? 그녀가 가로질러온 시대의 크고 작은 정치적 사건들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그리고 누구를 사랑했을까? 무엇을 좋아했을까? 이 모든 것으로부터 단절된 지금 무엇을 생각할까? […] 곁에 함께 있는 사람들은? 식당 테이블 주위에 있는 이 사람들은 과거의 어떤 연이은 사건들, 사회 세계의 어떤 계층들을 구현했는가? 이 틀 안에 제대로 도달하지 못했던 어떤 공통의 역사들, 혹은 서로 어긋나는 역사들이 합쳐지는가? […] 그 과거와 배경은 아마도 그녀들이 완전히 뒷전으로 밀어놓지 않고 서로 이야기하기로 동의했다면 말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 p.76~77
어머니의 진심 어린 비명은 내 지난 사유의 궤적을 되돌아보도록 만들었다. 우리가 ‘수치심’을 노화와 신체적 쇠락의 시공간 안으로의 유폐와 맺는 연관성 속에서 접근할 때, 그 감정은 불가피하게 ‘존재론적 구조’라는 관념과 만난다. 타자의 시선이 일으킨 불편함과 불쾌감의 효과, 더 깊숙이는 타자가 규정하는 대로 자기 고유의 존재 내부로 유폐되며 발생하는 효과라는 의미에서 ‘수치심’의 감정 말이다.
--- p.84~85
나는 이미 청소년기부터 줄곧 규범적 틀을 위반하는 섹슈얼리티?나의 경우?에 대한 낙인찍기와 추방을 경험했고, 아무도 내 선택에 간섭할 수 없도록 날 조직하면서 삶을 구축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어머니의 선택과 어쨌거나 자식들이 부정적으로 판단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선택을 포기하지는 않으려는 욕망에 연대감을 느꼈다. 게다가 내 반응이 어떨지(“원하는 대로 하세요”) 간파했기에 어머니는 내 형제들에게 알리기 전에 내게 미리 알린 것이 아니겠는가? 어머니는 게이 아들의 즉각적인 승인에 의지했고, 그 승인은 그녀에게 모종의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내가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더라도 그녀를 단념시키지는 못했을 테지만, 내 [호의적] 반응이 어머니가 하려던 일을 스스로 감당하기 용이하게 해주었을 것으로 믿는다.
--- p.132
내 삶 속에서, 개인적 정체성 안에서, 자기 규정 안에서 무언가 변화했다. 난 아들이었고, 이제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 생전에 우리 관계가 아무리 멀고 간헐적이었다 해도, 그리고 근본적으로 내가 평생 아들로서 노력한 적이 거의 없었다 해도(이렇게 말하자. 난 더 이상 아들이기를 원하지 않았고, 그래서 괴로웠다고) 난 언제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이었다. 게다가 이제 나이 들고 점점 병들어가는 어머니를?약간?돌본 지난 몇 년간 다시 아들이 되지 않았던가. 그렇다. 아들이 바로 나였다. 난 정말로 아들이길 그친 적이 없었다.
--- p.154
우리의 말다툼은 우리 사이에 이미 간극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는 자명한 사실을 표현했다. 그녀는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현실에 영원히 갇혀 있었다. 나는 다른 것을, 떠나는 것을, 벗어나는 것을 꿈꾸었다. 그걸 어머니가 아예 모르지는 않았다. 적어도 어머니는 예감했다. 그리고 이는 그녀를 한층 더 모질게 만들었다. 어머니는 내가 그녀와 멀어질 수 있게 광고 전단을 배포했다. 난 광고 전단을 배포하고 싶지 않았다. 내 방에서 책을 읽고 싶었기 때문이고, 내가 이미 어머니에게서, 그들에게서, 가족에게서, 내 환경에서 멀어졌기 때문이고, 다른 사람이 되려면 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규칙파괴자
데이비드 가드너 저/김태훈 역
|국일증권경제연구소
- 지금까지의 투자 법칙은 모두 잊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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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틀리풀 창립자 데이비드 가드너의 첫 단독 투자서. '저점 매수, 고점 매도'라는 시장의 관행을 깨고, 고평가된 기업 뒤에 숨겨진 잠재력에 주목한다. 기업의 장기적 성장 가치를 꿰뚫는 날카로운 인사이트를 담았다.
2026.01.09 경제 경영 PD 오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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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4월 15일, 엔비디아는 주당 21.35달러에 거래되었다. 내가 이 사실을 아는 이유는 그날 모틀리풀의 ‘스톡 어드바이저’ 코너에서 처음 엔비디아 종목을 추천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엔비디아는 이 시대 최고의 주식 중 하나가 되었다. 전형적인 규칙 파괴 기업인 엔비디아는 우리가 추구하는 6가지 속성을 모두 지니고 있었다. 바로 그래서 내가 엔비디아를 고른 것이다! 그러나 이는 종목 선정에 관한 얘기이니 2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이 장의 목적은 종목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을 형성하는 것이다. 습관 형성은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이자, 아마도 가장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러한 습관이 없으면 엔비디아를 알아도 놓치거나, 너무 일찍 매매하거나, 흔들리거나, 시장의 잡음에 밀려난다. 99.9%의 투자자(주로 전문 투자자)들과 함께 말이다. 그러면 당신은 꿈같은 수익률, 즉 온 세상을 이기고, 눈이 휘둥그레지고, 경제적 자유를 선사하는 일생일대의 수익률을 놓치게 된다.
--- 「1장 대박 종목은 일단 계속 가도록 놔둬라」 중에서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책은 ‘규칙 파괴’에 대한 것이다. 그러니 나의 접근법이 인간의 심리와 기대 그리고 통념, 특히 ‘저점 매수, 고점 매도’라는 상투적인 구호에 어긋날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저점 매수, 고점 매도’는 (트레이더들이?) 순진한 대중을 바보로 만드는 가장 해로운 구호이다. 당신이 외워야 할(냉장고에 붙여둬야 할) 구호는 ‘고점 매수, 매도 자제’이다. 규칙 파괴 투자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하는 종목에 초점을 맞춘다. 투자금을 추가할 때도 이런 종목에 투자한다. 꾸준히 상승하는 종목 말이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반대로 한다. 즉, 저점에서 매수하여 손실이 나도 계속 돈을 넣는다.
--- 「2장 물타기는 두 번 다시 하지 말고, 불타기를 하라」 중에서
‘투자(investment)’의 라틴어 어원은 ‘인베스티레(investire)’이며, 그 뜻은 ‘옷을 입다 또는 의상을 걸치다’이다. ‘성직자의 의복(priestly vestments)’ 같은 어구와 관련 있다. 팬들이 좋아하는 팀의 유니폼을 입은 모습을 떠올려 보라. 그들은 자기 팀의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에서 자기 팀을 응원한다. 팀이 지든 이기든, 유니폼을 계속 입는다. 시즌 성적이 좋든 나쁘든, 유니폼을 계속 입는다. 왜 그럴까? 깊이 애착하기(invested)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생에 있어 훨씬 큰 가치를 지닌 주식보다 스포츠 팀에 애착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스포츠팬들은 자기 팀이 모든 경기를 이기거나 모든 시즌을 우승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안다. 그렇지만 그 팀을 계속해서 응원한다. 규칙 파괴자들 또한 자신이 투자한 주식들이 모두 성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러나 좋은 팀을 꾸렸다면 그대로 계속 간다. 스포츠팬들이 그런 것처럼.
--- 「3장 최소한 3년은 보유하라」 중에서
물론 우리는 기업이 궁극적으로 많은 이익을 내기를 바란다. 하지만 아이러니한 사실은 여러 산업에 걸쳐서 많은 이익을 내는 기업은 대개 ‘이익보다 목적’을 앞세운다는 것이다. 실제로 모범적인 사례들이 있다. 존슨앤존슨(Johnson&Johnson)은 1982년에 독극물 파동이 일어났을 때 규제당국의 압력이 없었는데도 3,100만 병의 타이레놀을 회수했다.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자연환경을 보존하고 복원하는 사업에 매출의 1%를 기부한다. 벤앤제리스(Ben&Jerry’s)는 사회운동을 아이스크림 맛과 사업모델에 통합한다. 홀푸드마켓은 친환경 농업에 막대한 투자를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테슬라의 공식적인 사업 목적은 ‘많은 돈을 버는 것’, ‘전통적인 자동차 회사를 몰아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하는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런 기업들은 그저 이익을 내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부 경우에는 업계 최고의 이익을 낸다(때로는 업계 전체의 이익을 독차지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목적의식을 기업의 동력으로 삼기 때문이다.
--- 「4장 의식 있는 자본주의의 4가지 신조를 따르라」 중에서
오늘날 신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개발?전개되고 있다. 인터넷은 전화기보다 빠르게 수용되었으며, 인공지능은 인터넷보다 빠르게 수용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규칙 파괴 기업이 등장하고 있다. 기존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신기술에 주목하는 것이 주식을 투자할 때 큰 보상을 안겨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1967년 영화 「졸업(The Graduate)」에서는 주인공 벤저민 브래독(더스틴 호프먼 분)이 아버지의 친구에게 붙들려 조언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의 친구는 미래를 한 단어로 설명한다. 바로 ‘플라스틱의 시대’라는 것이다. 당시 플라스틱 산업은 기술 발전과 경제적 기회를 상징했다. 요즘의 아버지 친구들은 당신을 급히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이런 단어들을 말할 것이다. ‘AI’, ‘유전학’, ‘지속가능성’, ‘양자’, ‘블록체인’, ‘우주’, ‘로봇’.
--- 「7장 주요 신흥 산업의 최강자이자 선두주자」 중에서
스타벅스가 1992년에 상장되었을 때 ‘커피하우스는 지나가는 유행’이라고 무시하는 사람이 많았다. 역사적으로 미국에서는 커피하우스 혁명이 일어난 전례가 없었다. 그래서 스타벅스는 계속 무시당했다. 슈퍼히어로 영화도 비슷한 오해에 시달렸다. 소니의 「스파이더맨」이 2002년에 크게 히트했지만 논평가들은 슈퍼히어로 열풍이 과거처럼 금방 잦아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1980년대에도 ‘배트맨’과 ‘슈퍼맨’ 프랜차이즈의 인기가 점차 식어갔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마블 주식에 먹구름이 드리우면서 2002년 여름에 주가가 하락했다. 토비 맥과이어가 맨해튼에서 더 이상 활약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먹구름 너머를 볼 수 있었다. 마블의 수많은 캐릭터들은 별로 돈이 되지 않는 오랜 매체(만화책)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큰돈을 벌 수 있는 스크린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2002년 여름에 마블 주식을 추천했다. 그 이후로 스파이더맨 시리즈부터 헐크 시리즈에 이어 아이언맨 시리즈까지 마블 영화의 흥행 성적을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확인했다.
--- 「8장 지속가능한 경쟁우위」 중에서
위 차트들을 보면 주가가 3개월에서 9개월 동안 30~90%씩 상승한 것을 알 수 있다. 기간과 상승률 수치가 비례하는 게 흥미롭다! 다른 투자서라면 이 차트들을 저자의 대박 투자를 자랑하는 수단으로 사용할 것이다(와! 너무 좋다. 6개월 동안 60% 상승했다). 하지만 내가 자랑할 것은 그게 아니다. 나는 이 모든 종목을 차트의 시작 부분(좌하단)이 아니라 끝 부분(우상단)에서 추천했다. 맞다. 나는 지금 차트에 나온 상승이 끝난 후에 유료 구독자들에게 이 종목들을 추천했다고 자랑하는 중이다. 그리고 그게 자랑인 것도 맞다. 이 각각의 종목들은 내가 추천한 이후로 52배에서 1,371배 상승하면서 명예의 전당에 들어갔다(최저 상승 종목은 애플, 최고 상승 종목은 아마존).
--- 「9장 과거의 눈부신 상승 」 중에서
모든 산업에는 천재들이 있다. 그들은 종종 규칙 파괴 기업을 세우고 운영한다. 천재들이 운영하는 기업의 주식을 골라라. 경영자의 능력을 파악하고 존중하는 것은 당신의 투자수익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규칙 파괴 기업의 대표가 종종 올해의 기업인에 선정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항상 주가가 급등한 이후에 선정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리드 헤이스팅스는 내가 넷플릭스를 추천한 지 6년 후인 2010년에 「포춘」지 올해의 기업인에 선정되었다. 제프 베이조스는 내가 아마존을 추천한 지 2년 후인 1999년에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그래도 제프 베이조스는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빨리 선정되었으니 「타임」지의 안목을 인정해야 한다. 테슬라는 2011년 11월에 내가 ‘룰브레이커’에서 추천한 종목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일론 머스크는 「타임」지 올해의 인물에 선정되었다. 엔비디아를 세운 젠슨 황(Jensen Huang)은 내가 엔비디아 주식을 보유하기 시작한 지 12년 후인 2017년에 「포춘」지 올해의 기업인에 선정되었다. 이들은 모두 이후에도 사업을 잘 운영했다.
--- 「10장 훌륭한 경영자와 똑똑한 후원자」 중에서
‘고평가되었다’의 용례에는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맨 처음 이 말은 전문가들의 경고 수단으로 쓰인다. 즉 아마존, 테슬라, 인튜이티브서지컬, 애플 같은 종목에서 멀리 떨어지라고 말하는 신호다. 당신도 ‘현재 너무 비싸고 리스크가 크니까 조정을 기다리라’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종목들의 주가는 계속 오르기만 한다. 그러자 갑자기 이전에는 콧방귀를 뀌고 고개를 젓던 사람들이 갑자기 말없이 관망세로 돌아선다. 마치 아마존이 전자상거래 부분을 지배하고, 테슬라가 자동차 산업을 혁신할 것임을 항상 알았던 것처럼 말이다. 비관론자들은 입을 다물고, 과거 ‘고평가되었다’던 종목의 가치는 자명해진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 또는 자신이 보지 못한 것을 본 당신이 옳았다는 사실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는다. 웃기지 않는가? 한때 자기들이 심하게 폄하하고 거부하던 종목의 가치가 갑자기 명백해졌다니.
블루의 세 가지 빛깔
제임스 캐플런 저/김재성 역/이기준 감수
|에포크
- 세 명의 천재와 새로운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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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빌 에번스. 세 천재가 일궈낸 재즈의 황금기와 명반 《Kind of Blue》. 각기 다른 '블루'가 만나 탄생시킨 새로운 '블루'의 서사는 개인의 기록을 넘어 재즈사의 불멸로 남았다.
2026.01.06 예술 PD 안현재
- 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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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는 19세기 말 뉴올리언스 민속 음악의 잡탕 수프에서 끓어오른 미국 유일의 토착 예술 형식이다. 재즈는 강과 철로와 푸른색 지방도를 따라 오클라호마시티, 캔자스시티, 세인트루이스, 시카고, 뉴욕으로 거침없이 퍼져나갔다. (…) 천재들이 나타났다. 수많은 천재들이. (…) 이 책의 중심이 될 세 명의 천재는 재즈가 생겨나고도 30~40년이 지난 즈음에 태어났다. (…) 1920년대, 1930년대, 1940년대 빅밴드들이 점점 사라지고 재즈를 댄스 음악으로 여기던 인식이 희미해지면서 대신 예술 음악, 감상용 음악으로서의 재즈가 자리를 잡기 시작하던 시절이었다.
--- p.24
마일스는 디지가 떠나면서 잠시 상실감에 빠졌지만 결과적으로 전화위복이 되었다. 52번가의 클럽 주인들이 버드에게 다음 트럼펫 주자는 누가 될지 물었다. “어느 클럽에선가 버드와 함께 있는데 업주가 그 질문을 던졌다.” 데이비스의 회고담이다. “그러자 버드가 나를 향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바로 여기, 내 트럼펫 주자야. 마일스 데이비스.’”
--- p.94
콜트레인에게는 필라델피아의 여러 클럽들에서 임시로 꾸린 밴드들과 연주하며 “바 위를 걸어야(walk the bar)” 하는 밤들도 있었다. 말 그대로 칵테일과 맥주병이 널린 바 위를 걸어 다니며 최대한 요란하게 솔로 연주를 하는 것이다. 베니 골슨이 “포인트 바에 들어갔는데 마침 바 위에서 연주하던 콜트레인이 그를 보고는 몹시 당혹스러워하며 ‘아, 안돼!’ 하고 외치더니 클럽을 뛰쳐나갔다”고 포터는 쓰고 있다.
--- p.178
생긴 것도 연주도 영 촌뜨기인 이름 없는 피아노 주자를 만났다. 내가 아는 그 어떤 재능 있는 재즈 피아니스트와도 닮은 구석이 전혀 없었다. 고고학이나 식물학을 전공하는 대학생 같아 보였다고 할까. 미안한 말이지만, 그는 전형적인 ‘너드 nerd’였다. 그의 이름은 빌 에번스였다. 훗날의 그 빌 에번스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장차 모두가 존경하고 흠모하게 될, 새로운 길을 열어갈 혁신적인 피아노 주술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 p.253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 하나 있다. 복수의 사람들이 음반 계약을 들고 데이비스에게 달려간 건 아니었어도 아주 중요한 한 사람이 그랬다는 것이다. 그날 밤에 컬럼비아 레코드의 대중음악 부문을 총괄하는 조지 아바키언이 영화 편집자이자 사진작가인 남동생 아람과 함께 객석에 앉아 있었다. 마일스가 〈’Round Midnight〉의 아름다운 솔로를 끝마치기도 전에 아람이 형 쪽으로 몸을 기울여 말했다. “계약해, 당장! 오늘밤이 지나면 저 친구가 돌아왔다는 걸 모두가 알게 될 거야.”
--- p.284
바깥은 1959년 늦겨울 오후 도시의 일상적인 소음으로 가득했지만, 안에는 시간에서 분리된 듯한 짙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So What〉이란 제목이 붙을 CO 62291 녹음이 시작되었다. 《Kind of Blue》로 발매될 앨범의 첫머리를 장식하게 될 곡이었다. 첫 테이크가 시작되었다. 시작이 잘못돼 4초 만에 끝난 첫 테이크에 이어 두 번째 테이크는 49초 만에 부스에서 타운센드가 중단시켰다. 뭔가가 깊은 고요함을 방해하고 있었다. “잠깐,” 프로듀서가 말했다. “미안한데, 자, 주의해주세요. 음, 전체적으로 잡음이 들어오고 있어요. 워낙 조용하게 시작하는 곡이라서. 딸깍 소리, 스네어 소리도 마찬가지예요. … 지금 거기서 진동이 들어오거든요.” 우연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마일스가 이의를 제기했다. “뭐, 그것도 음악에 딸려오는 거야. 그 모든 게 음악의 일부지.”
--- p.414
《A Love Supreme》은 그야말로 위대한 예술 작품이다. (…) 엘빈 존스가 치는 중국 징의 첫 울림과 콜트레인이 〈Acknowledgement〉에서 들려주는 장엄하고도 평온한, 무에진(muezzin)을 연상시키는 도입부 악절에서부터, 〈Psalm〉의 마지막에 들리는 심벌즈와 베이스와 피아노의 사라져가는 소리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경외감으로 직조된 《A Love Supreme》은 한 위대한 뮤지션의 평생에 걸친 구도의 정점을 보여준다.
--- p.508
1963년 초, 평론가들조차 그가 음악적으로 유아론적 경향을 보인다고 비판하는 가운데 에번스는 오버더빙을 통해 스스로 반주까지 도맡은 앨범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도의 기교를 요하는 대담한 작업이었고, 녹음 시간도 상당히 소요되었다. (…) 에번스는 녹음 세션 도중 헤로인 금단 증상에 시달리기 시작했지만 끝까지 마치겠다고 고집했다. 킨과 리스는 “스튜디오 조명을 낮추고 진심을 다해 그를 격려했다.” 이렇게 나온 앨범 《Conversations with Myself》는 1964년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 p.537
데이비스에 대한 리브먼의 존경과 애정은 결코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봤을 때 1980년대의 마일스는 또 한 세대에게 그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예요. [컴백을 안 했다면] 그를 몰랐을 거잖아요. 내게 찰리 파커가 그렇듯 역사 속 인물로서만 알았겠죠. 그런데 이 세대가 실제로 가서, 연주하는 그를 보고 들을 수 있게 된 겁니다. 나에게는 적어도 사람들이 그의 연주를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어요. 비록 음악이 약해지긴 했지만.”
서울시 역세권 재개발 최강투자
전영진 저
|진서원
- 재개발 소액 투자, 지금이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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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현장을 30년 가까이 누벼 온 전영진 저자의 역세권 재개발 투자서. 서울시 역세권 재개발을 중심으로 구역 선정부터 매매 타이밍, 리스크 관리까지 꼭 필요한 핵심만 정리했다. 소액 투자자를 위한 현실적인 재개발 가이드.
2026.01.06 경제 경영 PD 오다은
지금 사시면?
[경제경영/자기계발] 휴대용 칫솔 살균기 (포인트 차감)
모리와 함께한 마지막 수업
모리 슈워츠 저/김미란 역
|부키
- 마지막 순간까지 아름다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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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고전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주인공 모리 슈워츠가 남긴 마지막 기록. 죽음 직전까지 사랑, 가족, 보살핌, 연민, 웃음이라는 가치를 고민한 따뜻한 기록. 당신을 다정한 사람으로 변화시킬 아름다운 글.
2026.01.06 손민규 인문 PD
지금 사시면?
[1월의 굿즈] 미피 니트 블랭킷/백택/높이 조절 테이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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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웃고 춤추는 것을 좋아했으며 권위자에게는 경외심을 품지 않고 소외된 이들에게는 친절했다. 학생들에게 영감을 주는 동시에 사랑스러운 남편이자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었다. … 모리 교수는 과감한 선언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에게서는 예수, 부처, 에피쿠로스, 몽테뉴, 에릭 에릭슨의 향기가 느껴진다.
인생에 가장 가까운 것
제임스 우드 저/노지양 역/신형철 해제
|아를
- 읽기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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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쓰기보다 대체하기 어려운 게 읽기다. 읽는 건 결국 인간의 몫이다. 왜 읽어야 하는가? 문학 비평가 제임스 우드에 따르면, 삶의 본질에 다가가기 위해 읽는다. 문학이 지닌 힘에 관한 매혹적인 에세이.
2026.01.06 손민규 인문 PD
지금 사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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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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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특히 소설은 은폐와 거짓의 습관에서 잠시 벗어나 숨 쉴 틈을 허락해주었는데, 부분적으로 소설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은유적 버전이라 할 수 있었고 책이라는 세계는 의미 있는 진실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혹은 픽션)을 사용하는 곳이었다. 청소년기에 장편소설이나 단편소설이 완벽히 자유로운 공간이라는 숭고한 발견을 했을 때 온몸으로 느꼈던 전율이 아직도 기억난다. 소설이라는 무한한 자유 공간 안에서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있고, 어떤 말도 내뱉을 수 있었다. 소설 속에는 무신론자, 속물, 자유주의자, 간통자, 살인자, 강도, 카스티야 평원을 달리는 광인, 오슬로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방황하는 사람이 있었다. 파리에서 한몫 잡으려는 젊은 남자, 영국에서 출세하려는 젊은 여자, 존재하지 않는 도시들, 지구상에 없는 나라들, 우화와 초현실만 있는 신비한 땅, 벌레로 변신한 인간, 고양이가 화자인 일본 소설, 수많은 나라의 시민들, 동성애자, 신비주의자, 지주와 집사, 보수주의자와 급진주의자, 보수주의자이기도 한 급진주의자, 지식인과 얼간이, 지식인이자 얼간이, 술꾼과 사제, 술꾼 사제, 산 자와 죽은 자가 있었다.
--- p.39~40
소설은 우리에게 사례와 형식 간의 관계를 가르쳐준다. 이는 분명 달성하기 어려운 과업인데, 우리는 대부분 우리 삶의 형식을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매 순간 아침을 먹고 출근하고 돈을 벌고 아이들을 학교에 꼬박꼬박 보내는 것처럼 어떤 순간들을 뚫고 지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중 우리의 순간들이 즐거울 때, 즉 환희에 가까운 순간을 맞을 때(이를테면 사랑에 빠질 때도), 아니 특히 그 순간이 행복할 때 시간은 엉성하게 흐르며, 우리는 느긋하게 여유를 갖고 그 시간의 모양을, 그 환희의 시작과 끝을, 각 단계와 기간을 지켜보지 못한다. 우리는 오직 회고로서만 우리의 ‘출입’을 이해할 수 있는 저주를 받았고, 마치 뱃머리에 앉아 노를 젓고 있는 것처럼 이미 지나온 자리만 맑은 눈으로 볼 수 있다. 몇 년 만에 어떤 도시로 돌아온 후에야 “나는 여기서 살 때 행복했어”라고 말할 수 있다. “이십 대 내내 불행했어.” “나는 진짜 사랑에 딱 한 번 빠졌었지.” “이제 와서 보니 그 직업을 택한 건 실수였어.” 그리고 나는 내 친구 동생의 추도식에 참여하고 나서야 그의 아버지가 이 가슴 저미는 시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완벽했던 여름… 가족 중 누구 하나도 죽어가지 않았던 그 여름을 기억한다.”
--- p.53~54
세부 사항으로 인해 이야기 속의 특정 순간이 형식 안에서 살아남기도 하고, 취소되기도 하고, 회피되기도 한다. 나는 세부 사항이란 형식이라는 액자 안에서 튀어나와 우리에게 만져달라고 애원하는 삶의 조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세부 사항은 단순한 삶의 조각이 아니다. 세부 사항이란 최대치의 문학적 기교(작가의 천재적인 선택과 창조적 상상력)로 최대치의 비문학적 또는 실제 삶의 시뮬라크르를 생산하는 마법적 조합이라 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문학적 기교는 (허구적인, 다시 말해서 새로운) 삶으로까지 전환되는 것이다. 세부 사항은 삶과 유사한 것(lifelike)이 아니라 그런 기능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서, 그 자체로 존재하는 사물들(things-in-themselves), 즉 내가 삶다움(lifeness) 그 자체라고 부르는 것이다.
--- p.81~82
우리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세부 사항의 총합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의 세부 사항은 우리가 가진 세부 사항의 총합을 초과할지도 모른다. 그걸 계산하기는 불가능하다.) 그 세부 사항들이 곧 이야기, 미니어처 이야기다. 우리가 나이를 먹을수록 그 세부 사항 중 일부는 희미해지고, 역설적이게도 또 어떤 세부 사항은 날이 갈수록 선명해진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기억을 계속해서 다시 쓰고 있는 내면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 p.87
소설 안에서 우리는 자아의 모든 연기와 가식적인 행동, 두려움과 비밀스러운 욕망, 자부심과 슬픔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을 진지하게 관찰함으로써 그들을 더 잘 이해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의 동기가 무엇인지 더 예리하게 살펴보면서 그들의 주변과 그 이면까지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소설은 인간이 얼마나 모순적인 존재인지를 극적인 방법으로 묘사하는 가장 뛰어난 장르다. 우리는 어떻게 완전히 반대되는 두 가지를 동시에 원할 수 있을까?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모순을 얼마나 탁월하게 포착하는지 생각해보자. 우리가 어떻게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미워하는지, 바람 부는 날의 구름처럼 우리의 기분이 얼마나 순식간에 이런 모양에서 저런 모양으로 변하는지.
--- p.106~107
작가들이 세상을 진지하게 관찰할 때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관찰 대상의 생명을 죽음으로부터 구해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죽음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문학적 형식이 항상 삶에 강요하려고 위협하는 작은 ‘죽음’이고 다른 하나의 큰 죽음은 실제 죽음이다. 다시 말해서 작가들은 우리를 우리의 죽음에서 구출해주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내가 말하는 죽음이란 세부 사항들이 우리에게서 점차 멀어짐에 따라 서서히 희미해져가는 현실이다. 이는 어린 시절의 기억, 이제는 거의 잊어버린 맛과 향기와 촉감의 강렬함, 그리고 우리가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음으로써 세상이 맞게 되는 느린 죽음이다.
--- p.110
내가 감탄해 마지않는 비평은 대부분 특출나게 분석적인 글이 아니라 진정한 열정으로 이루어진 재서술(re-description)이다. 때로는 시인이나 소설가가 낭독하는 시나 문장을 듣는 것이 비평적인 행위가 되기도 한다. 작가들이 항상 배우와 연기에 관심을 가져온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배우가 가장 순수한 최초의 비평가라는 점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나 희곡을 소리 내어 읽는 것과 자신이 들려주고자 하는 문학을 다시 이야기하는 것(retelling)은 동일 선상에 있다. 좋은 비평가는 비평이란 어떤 면에서는 자신이 읽고 있는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임을 인식하고 있다. ... 나는 이런 방식의 비평적 다시 이야기하기를 책에 대한 글쓰기가 아니라 책을 통과하는 글쓰기라고 부르고 싶다. 이 통과하는 글쓰기는 종종 문학 작품이 사용하는 은유와 비유의 언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는 문학 비평이 지닌 차별성을 인식하는 것이기도 하다. 문학 비평은 자신이 설명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매체인 언어를 사용해 자신의 작업을 수행하는 특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